옛날 서울 이문 안에 '여보'주점이라는 색다른 술집이 있었다 한다. 이 술집 주모가 어찌나 콧대가 세던지
천한 신분이면서 양반이나 벼술아치는 커녕 권문세도의 대가 일지라도 손님에게 여보여보...... 불렀기로
여보 술집으로 불렀다 한다.
요즈음 상식으로 여보라고 부르면 다정해 보이고 정감이 들기도 하지만, 신분질서가 삼엄했던 옛날에는
천한 사람이 귀한 사람에게 여보라고 부르면 신분을 평준화시킨 처사라 하여 윤상죄에 걸렸던 것이다.
이 주모가 담대해진 데는 그 나름의 연유가 있었다.
강화 도령이었던 철종이 입궐한 후에 강화에서 마시듯 한 서민적인 술을 마시고 싶다 하여 장안을 찾아헤맨
끝에 이 주모가 빚은 술이 가장 입맛에 맞는다고 판정되었고 임금님의 술을 대는 바람에 콧대가 세어졌다 한다.
연유야 어떻건 '여보'란 호칭으로 평등사상을 구현했던 용기있는 주모였던 것이다. '여보'란 호칭은 여보시오의
준말이라고 사전에 풀이돼 있다. 여보시오는 여기 보시오의 준말일 가능성이 높다. 곧 상대방에게 나를 돌아보게
하여 나의 존재를 확인시킴으로써 상대방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다분히 인권과 평등을 주장하는 호칭인 것이다.
지체가 높은 사람에게 아랫사람이 여보라고 부를 수 없으며, 또 지체가 낮은 사람에게 높은 사람이 여보라고
부를 수 없음은 여보가 지극히 평등사상을 구현한 근대적인 호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도 영감 같은 벼슬호칭, 바깥(주인) 같은 주종 호칭, 아무개 아버지 같은 격상호칭
으로 자신을 비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엄마 이름은 여보래요"라는 동요도 있듯이 남편이 아내를, 또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호칭으로까지 여보가
등장하게 된 것은 극히 근대의 일이며, 가정에 있어 그 혹심했던 부부차별이 끝나고 부부동권이 정립됐다는
근대화의 도표였던 것이다.